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튜어트 피어스 (문단 편집) === 노팅엄 포레스트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593337-1CB80F9600000578-741_634x442.jpg]] 피어스는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얼마 안가 주장이 되었고 12년간 포레스트의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는 2개의 리그컵과 Full Members Cup을 확보했고 1991년 FA컵 결승전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작렬했지만 아쉽게도 토트넘에게 패하고 말았다. 한편 피어스는 1989년 4월 15일 FA컵 준결승전에서 리버풀과 경기를 치르다가 [[힐스버러 참사]]를 목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포레스트는 유로피언컵을 2번 연속 우승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채 쇠락해가고 있었고 결국 1993년에 강등되고 말았다. 하지만 피어스는 팀에 남기로 결심했고 포레스트가 다음 시즌에 바로 EPL에 승격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피어스는 1994-95 시즌에 포레스트를 3위로 올리고 유로파 대회에 진출시켰으며 다음 해에는 유로파 4강전까지 진출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피어스는 1996년 12월 포레스트의 선수 겸 감독의 형식으로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프랭크 클락 감독은 포레스트를 리그 꼴찌로 인도하는 바람에 경질되었고 보드진은 오랫동안 팀을 위해 헌신했기에 팀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피어스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피어스의 첫번째 경기는 아스날과의 홈경기였다. 이때 한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경기가 코앞에 닥칠 무렵, 피어스는 선수 명단을 자택에서 작성하고 이를 막 경기 진행요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때 그의 아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당신, 마크 크로슬리 선수를 빼먹었어요!" 마크 크로슬리는 다름 아닌 '''노팅엄 포레스트의 주전 골키퍼였다.''' 이렇듯 얼빠진 모습을 보인 피어스였지만 경기는 포레스트의 2:1 승리로 끝났다. 이후 피어스는 1997년 1월에 '이 달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분전했지만 3월에 데이브 바셋 감독이 정식 부임하며 다시 선수로 전념했고 포레스트는 꼴찌로 강등되고 말았다. 이후 피어스는 포레스트를 떠났다. 피어스는 포레스트에서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간 레프트백으로 활약하며 401경기 63골을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